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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make hard choices | Ruth Chang


게시일: 2014. 6. 18.




가까운 미래에 마주칠 어려운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예술가와 회계사의 두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도시와 시골 중 어디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베티나 로리타중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아이를 가질 것인지, 병든 부모를 봉양할 것인지,

당신한테 냉정한 배우자가 따르는 그 종교속에서

아이를 양육할 것인지의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자선단체에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할 수도 있겠죠.

여러분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선택들은

크고, 중요하며, 여러분과 관련된 것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어려운 선택들은 괴롭고, 절망적이고, 이를 악물만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선택들과 그 선택들의 역할을 우리가 오해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선택을 이해하면 우리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보이지 않던 힘을 알게 됩니다.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쉬운 선택에서는 비교가 쉽습니다.

어려운 선택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낫기도 하고

다른 면에서는 저것이 낫기도 하며

둘 다 상대편보다 전체적으로 뛰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도시에서 현재 직업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보다 더 도전적인 시골에서의 삶을 찾아 떠날 것인지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면에서는 머무르는 것이 낫지만

다른 면에서는 이주가 낫고 둘 다 다른 것보다 전체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모든 어려운 선택이 큰 선택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정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섬유질이 많은 시리얼이나 초콜릿 도넛을 먹을 수 있습니다.

맛과 건강의 선택에서 무엇이 중요할지 생각해 보세요.

시리얼은 건강에 좋고 도넛은 맛이 더 좋습니다.

둘 다 전체적으로 상대보다 낫지는 않아요.

어려운 선택입니다.


작은 선택들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큰 선택들이 덜 힘들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아침에 먹을지 결정하거나

도시에 머무를지 시골의 새 직업을 위해 떠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선택이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멍청하니까요.



제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철학과 법률의 두 직업 가운데 무엇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철학을 좋아했어요.

철학자로서 배울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중산층의 이주민 출신입니다.


제 점심도시락에 돼지 혀와 젤리 샌드위치가 들어있는 것이 제 사치의 기준인 그런 집안입니다.

제 평생을 안락의자에 앉아 생각만 하며 보낸다고 생각하니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노란 메모지를 꺼내고 한 가운데에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두가지 선택들의 장단점을 생각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각 직업 선택의 결과를 알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하나님이나 넷플릭스가 제가 선택하게 될 직업의 DVD를 보내준다면 

저는 그것들을 나란히 비교할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알 테고 선택은 쉬워지겠지요.

하지만 제게는 DVD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선택이 더 좋은지 알 수 없었기에

저는 어려운 선택에서 사람들이 선택할만한 것을 했습니다.

저는 가장 안전한 것을 골랐어요.


실직한 철학자가 될 것이 두려워서 저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변호일은 맞지 않았어요.

변호사는 제게 맞지 않았지요.

그래서 저는 이제 철학자가 되었고 어려운 선택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어려운 선택을 할 때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그 밑에는 오해가 깔려 있습니다.

어려운 선택을 할 때, 한가지 선택이 다른 것보다 분명히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우리는 멍청해서 어느 쪽인지 모릅니다.

어느 쪽인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위험이 낮은 선택을 합니다.

두 선택을 나란히 놓고 모든 정보가 다 있어도 선택은 여전히 힘듭니다.

어려운 선택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최고의 선택이 없기에 힘듭니다.



그럼 최고의 선택이 없다면 만약 저울이 한 가지 선택을 따라 기울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선택들은 분명히 똑같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선택에서 말할 수 있는 바른 말은 정말 두 가지가 똑같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죠.

만약 선택들이 똑같이 좋다면 여러분은 동전뒤집기라도 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실수처럼 보입니다.

이제 어떤 직업을 골라야 하는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지 궁금하면, 동전뒤집기를 하세요.


또한 어려운 선택들이 똑같이 좋은 선택 중에 있지 않다는 또 한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두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투자 은행가나 그래픽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선택에서 중요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 속에서의 희열이나, 경제적 안정성이나,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갖는 것 등등입니다.

아마 예술가를 선택하면, 회화 표현의 최신 기법들을 알 수 있게 되며, 

은행원을 선택하면, 재정적인 조작들의 최신 기법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두 가지 직업을 생각해 보세요.

그 둘 중 하나를 약간 더 좋게 만든다고 생각해 봅시다.


은행이 여러분에게 잘 보이려고 매달 500불을 월급에 추가해 준다고 칩시다.

그 추가 월급이 은행 일을 예술가의 일보다 더 나아지게 만드나요?

꼭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월급이 많아지면 은행 일이 이전보다 좋아질 수는 있지만,

은행가의 일을 예술가의 일보다 더 좋게 만들기에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직업의 개선이 다른 직업보다 더 낫게 하지 않으면 

두 가지의 직업이 원래 똑같이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똑같이 좋은 두 일을 시작해서

그 중 하나를 개선했다면 그것은 분명 다른 것보다 더 좋아야 합니다.

이것은 어려운 선택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우리는 두 직업을 가지고 있고, 둘 다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똑같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할까요?


여기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아마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비교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은 틀렸습니다.


우리가 비교할 수 없는 두 가지 일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두 직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지 숫자 9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계란프라이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직업의 전체적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며 자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어림짐작 하기 때문에 엉뚱한 생각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의, 아름다움, 친절함과 같은 가치들이 마치 길이, 부피, 무게와 같은 과학적인 양과 유사하다고 자신도 모르게 가정하고 있습니다.


가치를 포함하지 않는 비교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두 옷 가방중에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와 같은 질문이요.

이럴 때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가벼운지.

아니면 같은 무게인지.

무게와 같은 속성은 실수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1, 2, 3 이런식으로요.

두 개의 실수 사이에서는 세 가지 비교만 가능합니다.

한 숫자가 다른 숫자보다 크거나, 작거나, 아니면 같죠.


가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계몽주의를 경험한 우리는 과학적인 사고가 우리 세상의 모든 중요한 것들을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의 세계는 과학의 세계와 다릅니다. 

과학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실수로 계량될 수 있지만, 가치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계량이 안됩니다.

우리는 is의 세계, 즉 길이와 무게의 세계가 ought의 세계, 즉 당위의 세계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에게 중요한 것, 

즉 아이의 기쁨이나 여러분의 동반자에 대한 사랑을 실수로 나타낼 수 없다면 

선택에 세 가지 가능성만 있다고 믿을 이유는 없습니다.

선택이 다른 것보다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거나, 같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 좋다, 더 나쁘다, 같다라고 말하는 것을 뛰어넘는 네 번째 관계를 소개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선택에서 진행되는 것들을 설명하게 됩니다.




저는 이 선택들을 "동등하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택이 동등하다는 말은

여러분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선택들이 가치가 같은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리그에 있지만 그와 동시에 가치의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선택이 어렵습니다.

어려운 선택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잘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주치는 모든 선택이 쉬운 선택인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말하자면 언제나 최고의 선택만 있는 곳이죠.

만약 최고의 선택이 있다면 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성적이 된다는 것은 더 나쁜 일보다 더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고

선택할만한 이유가 가장 많은 것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가장 합당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분홍색보다 검은색 양말을 신을 이유,

도너츠대신 시리얼을 먹을 이유,

시골보다 도시에서 사는 이유,

로리타대신 베티와 결혼할 이유 말입니다.

쉬운 선택만으로 가득한 세상은

우리를 이유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이유들이

여러분이 추구하는 바로 그 취미,

여러분이 거주하는 바로 그 집,

여러분이 다니는 바로 그 직장에 대한 이유를 갖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대신, 여러분은 동등한 선택에 직면하는 겁니다. 어려운 선택이죠.

여러분은 그 취미와, 그 집과, 그 직업을 선택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선택이 동등할 때 우리의 실수를 결정짓는 것들이 우리가 선택한 이유들이고,

그것들은 어떤 것을 할지에 대해 침묵합니다.


바로 이곳, 어려운 선택의 공간에서 우리는 규정하는 힘을,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내는 힘을 훈련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시골에서의 삶을 도시에서의 삶보다 더 좋게 여기도록 만들어내는 그런 힘을 만듭니다.

우리가 동등한 선택들 중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정말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 뒤편의 우리 자신을 올려 놓을 수 있어요.


이곳이 제가 있는 곳입니다.

이게 저라는 사람입니다. 

저는 은행 일을 위해 있습니다.


저는 초콜릿 도너츠를 위해 있어요.

어려운 선택에서 이런 응답은

이성적인 응답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유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런 사람보다는 이런 사람이 되고자 이유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전심으로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의 작가가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선택을 만났을 때 어떠한 선택이 더 나은 것인가 찾아내려고 벽에 머리를 칠 필요가 없습니다.

최고의 선택은 없어요.


바깥의 이유를 찾기보다는 우리는 이곳에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

여러분은 분홍색 양말을 신고, 시리얼을 좋아하고,

시골에서 사는 은행가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검은 양말을 신고, 도시에 살며,

도너츠를 좋아하는 예술가를 선택할 수도 있어요.

어려운 선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어려운 선택에서 규정하는 힘을 발휘하지 않는 사람들은 떠돌이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들을 압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변호사 일에 열정을 쏟지 못했습니다.

저는 변호사에 맞지 않았어요.

떠돌이들은 세상이 그들의 이야기를 쓰도록 허락해 버립니다.

그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보상체계나, 두려움이나, 선택의 쉬운 정도들이 그들이 할 일을 결정하도록 해버립니다.



그러면 어려운 선택의 교훈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열정을 다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려운 선택을 통해 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려운 선택들은 결코 고통과 두려움이 아닙니다.

어려운 선택들은 소중한 기회입니다.


인간의 조건이 얼마나 특별한지 축하할 수 있는 기회이며 우리의 선택을 관장하는 이유들입니다.

옳거나 옳지 않거나, 때때로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바로 이곳, 어려운 선택의 공간에서 우리는 독특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어려운 선택들이 저주가 아니라 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번역: jonghyeok lee 

검토: Gemm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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