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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16. 11. 28.


왜 양질의 교육은 부잣집 자녀들만을 위한 것이어야 하나요? 미국의 저소득 지역 사회, 특히 유색 인종 거주지의 학교는 더 부유한 지역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악기, 새 책, 건강한 급식과 축구장 등을 갖추고 있지 않고, 이것은 학생들의 잠재력에 실질적 영향을 미칩니다. 칸디스 섬너는 보스턴의 교실에서 그 격차를 매일 경험합니다. 강연에서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고 바꾸기를 요구합니다.




저희 아이들 얘기를 할까 합니다.

물론 모든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가장 자랑스럽고 예쁜 아이라는 믿음이 있지요.

근데 제 아이들은 사실이에요.

(웃음)


제 696명의 아이들은 여러분이 만나게 될 아이들 중 가장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우수하며 강한 아이들입니다.


제 교실에서 가르칠 기회가 있었던 모든 학생은 제 자식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부모가 부유하지 않고 그들이 유색 인종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장점이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여러 번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 제 모습 제 과거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부지런한 대졸 흑인 부모의 딸입니다.

그들은 공직을 택했지요.

아버지는 정책 결정자 어머니는 교사이십니다.

부는 저희 집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저희 가족은 가난한 동네에 살게 되었고 가난한 교육 시스템 속에 있게 되었죠.

하지만 저희는 복권 같은 교육 기회에 당첨되었습니다.

자발적 지역 통합 프로그램에 따라 도심 빈곤 지역의 검은 피부 아이들을 교외의 백인 마을 학교로 통학시키는 것이었죠.

다섯 살에 저는 더 좋은 교육을 받으러 먼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다섯 살에 저는 모두가 저와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이 학교에 다니고 우리는 가족 그림을 그릴 때 갈색 크레파스를 쓰고 다른 아이들은 복숭아색을 쓰는 것뿐이라고요.

다섯 살에는 모두가 저와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게 많아졌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왜 다섯 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로 가지 않지?

나는 바이올린을 배우는데 왜 동네 친구들은 음악 수업조차 없지?

왜 동네 친구들은 내가 이삼 년 전에 끝낸 읽기와 쓰기 진도를 나가고 있지?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불공평한 마음에 속이 안 좋았습니다.

내가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을 누리고 있고 내 것이 아닌 무언가를 갖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죠.

내가 노출되고 경험하는 우수한 환경이 내가 누려야 할 것이 아니고 도서관과 각종 장비를 갖춘 체력단련장, 안전한 운동장이 당연한 것인가 하는 느낌이었죠.

계절마다 연극과 공연을 하는 연극부와 디지털, 시각, 공연 예술 다양한 학습 자료를 겸비한 생물실과 화학실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학교버스 신선한 점심 급식과 심지어 에어컨까지도 달랐죠.

주변에 살던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게 주어진 이 놀라운 기회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찔리기도 했죠.

다른 아이들은?

수많은 주변 아이들도 나처럼

이런 환경이 필요할 텐데

왜 모두가 갖지 못할까?

양질의 교육은 왜 부자들만 독점할까?

생존자의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교육적으로

몰락을 경험하고 있었고 저는 버스를 타고 구조를 받았죠.

교육을 부르짖는 모세 역할이었죠.

"양질의 학교로 아이들이 건너갈 수 있게 하라!"

(웃음)


주변 사람들이 받는 다른 교육과 대우도 직접 보았기에

약속의 땅의 교육을 보고는

그 격차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지금 저는 제가 탈출했던 그 교육 조건 속에서 가르칩니다.

학생 때 제게 주어진 교구들을 직접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교사로서는 학생들에게 같은 수준의 교구를 쥐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날 밤 좌절감 분노와 슬픔으로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교육받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고 내게 익숙한 교구와 시설을 지금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 아이들은 더 좋은 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데요.

이 말을 들으면 죄책감에 끝없이 머리를 박죠.

"성취도 격차."

여기 아이들은 성취도가 높고 여기 아이들은 아닌 이유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나요?

정말로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글로리아 래드슨 빌링슨의 말처럼 패러다임을 뒤집어서 언어와 의미를 일치시켜야 합니다.

성취도 격차가 아니라 교육 부채입니다.

검은색과 갈색 피부 학생들에게 교육 자본이 투자되지 않은 결과이죠.

미국 역사의 드러나지 않은 비밀은 유색 인종을 위해 만들어진 단 하나의 미국 제도가 노예 거래라는 것입니다.

감옥도 포함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TED 강연 하나 더 찍을 내용이죠.

(웃음)


미국 공립 학교 체계는 노예 매매와 노동의 힘으로 만들어진 상업에 의해 설립되고 지탱되었습니다.

흑인들은 노예제에 속박되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데 그들의 노동은 바로 그 교육 기관을 만드는 데 쓰인 것이죠.

그 때부터 모든 법원 판결과 교육 정책 개혁은 설계를 보완하려는 시도였죠.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요.



미국 교육사를 좀 과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잠시 설명 보시죠.



흑인들은 노예로 교육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관대한 백인들의 도움으로 그 다음에는 흑인들만의 학교를 만들었죠.

동등하지만 분리된 교육은 합법이었습니다.

분리된 건 물론이고 사실 동등하지도 않음은 모두가 알고 있었죠.

1954년 캔자스 주 토페카의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소송으로 이제 인종 분리 교육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모든 아이에게 약속의 땅을 기약한 브라운 대 위원회 소송의 뜻을 뒤집는 소송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현재 교육이 통합 교육 시도가 있기 전보다도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인종 통합 교육과 리틀록의 9인 인권 운동을 가르치는데 아이의 질문이 항상 교실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통합 교육이 1954년에 이루어졌는데 왜 우리 학교엔 백인이 없죠?"

(웃음)


아이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안 일어나는지 잘 알죠.

교육에 있어서도 흑인의 삶은 소중하지 않고 계속 그랬다는 것을요.



몇 년 동안 저는 아이들이 독서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학급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중고품 가게나 알뜰상품점 같은 그런 곳에서 책을 샀죠.

하지만 "책 읽을 시간이에요." 라는 무서운 말을 할 때마다

마치 선전포고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에게 고문이었죠.


어느 날

DonorsChoose라는 사이트에서 학급 교사들이 교실에 필요한 물품의 목록을 소원으로 적으면 익명 기부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십대를 위한 꿈의 도서관으로 소원을 적어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개가 넘는 새 책이 하나하나 제 방으로 도착했죠.

매일 새 책이 배송되었고 아이들은 신나서 소리질렀죠.

"크리스마스 같아요!"

(웃음)


그러고는

"섬너 선생님, 이 책은 누가 보내는 거예요?"

제 대답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이뤄 준 거란다."

그 다음에 아이들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그런데 책이 새 거네요."

(웃음)

제 대답은

"너희들은 새 책을 가질 만큼 소중하단다."


이 모든 경험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한 번은 여자아이가 새하얀 표지를 넘기면서

"섬너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이 책을 산 줄 알았어요.

선생님들은 항상 저희를 위해 뭔가 구해 주시곤 하니까요.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저를 생각해 준다는

기분은 정말 끝내주네요."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생각해 줄 것이라는 인식은 아이들이 누리지 못한 특권이었습니다.


기부 이후로

아이들이 대출 확인을 받고 책을 집으로 가져가서는

환호를 지르며 가져오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 책 좋았어요!"

(웃음)


이제 제가 "책 읽을 시간이에요." 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달려갑니다.

책을 읽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교구가 없어 기꺼이 읽지 못했던 것이었죠.



제도적으로

공립학교 체계는 흑인 아이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최종 결과나 시험 결과의 실망스러움에만 집중하죠.

재난 결과를 보고서는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지?" 하고 의아해합니다.

정말요?

오랜 기간 동안 아이를 방치하고서 아이가 바르게 잘 자라지 못했을 때 의아해할 권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당황해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어려워해야 할 것은 성취도 격차와 소득 격차와 수감률과 사회경제적 격차를 표현하는 어떤 단어가 아닙니다.

국가가 가진 문제는 우리가 국가로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교육의 질은 바로 대학 교육 가능성 직업의 질과 미래와 직결됩니다.

우리가 사는 곳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시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학교 기금 재원이 재산세나 고약한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어 부자 동네 아이들이 계속 혜택을 받고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계속 지원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지사, 의원, 시장과 시의회는 공교육을 공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공평한 체계로 바꿔야 합니다.

아니면 그 실제 이름은 빈곤 보험이 되겠죠.

"공교육 1954년부터 가난의 대물림에 기여."

(웃음)


우리가 국가적으로 정말 '교육의 기회 격차 해소'를 신뢰하려면 실제로 평등하고 공평해야만 하죠.

그때까지는 민주 교육이 아닙니다.

중간 수준에서는 역사적으로 흑인 교육은 자선 기금에 의존해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나 조카 혹은 이웃 그 누군가가 부유한 학교에 다닌다면 그 학교 위원회를 설득해 가난한 학교와 가난한 교실에 베풀게 하십시오.

소통과 교류에 참여함으로써 차이를 줄이십시오.

자원을 공유하면 각자의 몫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갑절이 됩니다.

작은 수준에서는 개인으로서 기부를 해 주세요.

시간, 돈, 자원, 기회 등 마음에 있는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DonorsChoose 같이 불평등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는 곳들이 있습니다.

공구 없는 목수가 어디 있을까요?

무대 없는 배우가 어디 있을까요?

실험실 없는 과학자가 어디 있을까요?

수술도구 없는 의사가 어디 있을까요?

교구 없는 학생이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여야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박수)


번역: Jeongmin Kim 

검토: Jihyeon J.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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