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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what it's like to go undercover in North Korea | Suki Kim


게시일: 2015. 6. 8.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전 6개월동안 저는 북한에 잠입해서 살았습니다.

저는 북한의 적인 남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또한 그들의 적인 미국에서 삽니다.

2002년 부터 저는 북한을 몇차례 방문했고 그 곳에 대해 의미있는 글을 쓰고

그들의 정권 선전 너머 그곳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완전 잠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양에 있는 남자 대학의 선생님과 선교사로 위장해 들어갔습니다.



평양 과학기술 대학은 북한 정권에 협력하는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설립했습니다.

이 대학에서는 북한의 엘리트들을 양성하고 중죄로 처벌되는 선교활동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270명의 남학생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고립된 독재정권의 미래 리더들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제 학생이 되었습니다.

2011년은 특별한 해였습니다.

북한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기 때문이죠.

그 의미를 축하하기 위해, 정권은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북한의 선전구호인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학생들을 공사판으로 내보냈습니다.

유일하게 그 운명을 피한건 제 학생들뿐이었습니다.


북한은 국가로 위장한 수용소입니다.

그 곳의 모든 것은 위대한 수령에 의해 존재합니다.

모든 책, 모든 신문기사, 모든 노래,TV 프로그램은 주제는 단 한 가지입니다.

꽃들은 그의 이름을 따 지어졌고 산기슭마저 그의 구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시민들은 수령사진이 달린 뱃지를 항상 착용해야 하고 달력체계조차 김일성의 탄생년에서 시작됩니다.



학교는 캠퍼스로 위장한 감옥이었습니다.

교사들은 내정된 감시원의 동행 하에서만 바깥출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조차도 수령을 위한 국가 기념물 방문에 국한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캠퍼스를 떠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부모와의 교류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일상을 꼼꼼히 기록되며 모든 자유시간은 그들의 수령을 위해 헌신합니다.

강의 내용은 북한 관리에게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모든 수업은 녹화되고 보고되며 모든 강의실과 대화는 도청됩니다.

모든 빈 공간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로 채워졌습니다.

북한의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북한밖의 세상에 대해 토론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기술대학 대부분의 학생들이 컴퓨터 전공이었지만 그들은 인터넷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마크 주커버그와 스티브 잡스를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이러한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해 줄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진실을 찾기 위해 그 곳에 갔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이념과 제 학생들의 일상생활, 심지어 대학에서의 제 위치가 모두 거짓 위에 만들어졌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게임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진실과 거짓" 게임을 했습니다.

학생 하나가 자원해 칠판에 문장을 하나 쓰고 다른 학생들이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추측하는 거죠.

한번은 한 학생이 "나는 작년 방학에 중국에 놀러 갔다왔어."라고 적자, 모두들 "거짓말!"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 모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북한 시민 대부분은 외국출입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국내에서 여행할 때도 통행증이 필요하죠.

저는 이 게임으로 인해 학생들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자주 쉽게 거짓말을 했으니까요.

그들 수령의 전설적인 업적이라던지 5학년 때 토끼를 복제했다는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이 예입니다.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그들에게 애매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거짓말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이해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했고 어려서 배운 거짓말을 그대로 뱉어 내기도 했습니다.

가끔씩은 습관적으로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평생 알고 있던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것을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저는 에세이 작문을 가르치려 노력했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에세이라는 것은 자신만의 논점을 증거로 제시해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저 지시하는대로 생각했고 시키는대로 복종했습니다.

그들의 세계에서 논리적인 사고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그들에게 매주 원하는 누구에게나 편지를 쓰도록 했습니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차차 그들은 편지를 썼습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 여자친구에게 말이죠.

비록 받는 사람에게 도착할 편지도 아닌 고작 숙제였지만 제 학생들은 천천히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의 반복이 지겹다고 적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편지에는 수령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제 모든 시간을 그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같이 식사를 했고, 농구를 즐겼습니다.

저는 가끔 그들을 "젠틀맨"이라고 하면 그들은 킥킥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이야기에는 마냥 부끄러워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에게 점점 더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몇 달동안 그곳에서 지내면서, 저는 진실이 과연 그들의 삶을 낫게 해 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나라와 바깥세상에 대해서요.

아랍 청년들이 소셜 미디어의 힘을 사용해서 부패한 정권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인터넷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말이죠.

하지만 그들에게 진실은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진실을 부추김으로써 저는 그들을 박해와 비통, 곤경으로 몰아넣는 셈이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것도 표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언의 뜻을 읽는 것에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들 중 한명의 편지에서, 한 학생은 제가 왜 그들을 항상 "젠틀맨"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그들이 그들 삶을 신사답게 보내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라고 했죠.



2011년 12월, 저의 마지막 날, 김정일의 죽음이 발표된 날에 그들의 세상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저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제가 얼마나 슬퍼했을지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한 학생이 제게와서 

"교수님, 저희는 절대로 저희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 상황은 다르지만 교수님은 저희와 같습니다. 

저희가 당신을 진정 똑같이 생각한다는 점을 교수님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불가능하지만, 오늘 만약 제가 그들의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젠틀맨, 

너희를 마지막으로 본지 3년이 넘었구나, 이제 22살, 23살 정도 되어 있겠지 

마지막 수업에서, 나는 너희들에게 원하는게 있으면 아무거나 말해보라고 했었지. 

너희가 유일하게 바랬던 것은 수개월동안 함께 있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부탁은 

단 한번만이라도 너희에게 한국어로 말해 달라는 것이었어.

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그 곳에 있었고 우리에게는 한국어를 쓰는게 허락되지 않는 것을 너희도 알고 있었지.

너희가 모국어의 유대감을 원한다는 걸 난 이해할 수 있었어.


나는 너희들을 나의 젠틀맨이라고 불렀지만 

김정은 체제의 무자비한 북한에서 신사답게 사는 것이 좋은 건지 모르겠어.


나는 너희들이 혁명을 이끌지 않길 바래.

다른 젊은이가 하도록 두었으면 좋겠어.

세계는 북한의 체제가 자연스럽게 변화하거나, 전 세계가 북한에 봄이 오기를 응원하고 기대하지만

난 너희가 어떤 위험도 무릅쓰지 않기를 바래.

너희의 세계에선 항상 감시의 눈이 있다는 걸 아니까.

난 너희에게 생길 일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

만약 너희에게 닿으려 했던 나의 노력이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면 차라리 날 기억에서 지우길 바래.

너희 위대한 수령의 군인이 되어 살아남고 안전하게 살기 바래.


한번은 너희가 나에게 평양이 아름답지 않냐고 물었었지.

나는 그 때 진실된 대답을 할 수 없었지.

너희가 왜 물어봤는지는 알아.

너희의 선생님이었던 나는 다른 나라들을 돌아봤고, 

금지된 바깥세상에서 온 나에게 너희가 사는 평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대답을 듣는게 너희에게 중요한 일이었단 걸 알아.

그런 대답을 들음으로 너희가 그 안에서 살기가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나는 너희 수도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었어.

평양이 단조롭고 콘크리트로 덮여 있어서가 아니라 그 곳이 상징하는 나라를 좀 먹는 괴물.

시민들은 노예 아니면 군인이었기 때문이었어.

내가 그 곳에서 본 것은 암흑뿐이었어.

하지만 이곳은 너희의 집이기에 평양을 미워할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스러운 어린 젠틀맨인 너희가 언젠가는 그 곳을 아름답게 만들기를 기원해.


감사합니다.

(박수)


번역: ChulGi Han 

검토: Jihyeon J.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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