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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more to life than being happy | Emily Esfahani Smith


게시일: 2017. 9. 26.


우리는 강박적으로 행복해야 한다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충만하도록 이끄는 것이 있을까요? 행복감은 왔다가 사라지기도 한다고 작가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말합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러분을 지탱해줍니다. 삶의 의미란 자신을 넘어 타인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최대치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미스가 말하는 의미있는 삶의 '네 개의 기둥'을 통해 행복함과 삶의 의미를 갖는 것의 차이를 배워보십시오.



예전의 저는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행복하기 위한 길은 성공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저는 애를 써서 이상적인 직업

완벽한 남자친구와 아름다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늘 근심이 가득했고, 방황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친구들 역시 비슷했지요.

그래서 저는 대학원에 가 긍정 심리학을 전공해서

진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발견한 사실로 인해 제 삶은 바뀌었지요.


여러 자료를 통해 행복을 좇는 사람은 결국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웠던 사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살률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고 

미국에서 최근 30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는 것이지요.

거의 모든 지표를 기준으로 우리의 삶은 객관적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우울하고 외롭다고 느낍니다.

공허함이 사람들을 갉아먹습니다.

우울증으로 진단받지 않은 사람도 말이지요.

결국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우리 인생은 원래 이런 건가?'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절망하게 되는 원인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삶의 의미지요.


하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행복감보다 인생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행복한 것과 삶의 의미를 갖는 것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많은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안정감있고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조금 더 심오한 문제입니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은

삶의 의미란 누군가와 유대감을 느끼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 안에 있는 최고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져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믿는 문화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야 삶이 충만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갖는 사람들은 더 회복력이 있고 학교와 직장에서 잘 해내며 심지어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궁금해졌지요.

우리는 어떻게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는 5년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심리학, 신경 과학, 철학 서적 수천 장을 읽었습니다.

모두 종합해보니

의미있는 삶을 구성하는 '4개의 기둥' 이라는 기준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 혹은 모든 기둥을 쌓아가면서 우리 삶의 의미를 만들 수 있지요.



첫째 기둥은 유대감입니다.

유대감은 여러분 자체로 가치를 인정해주고

여러분 역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일부 집단이나 관계에서는 낮은 수준의 유대감을 가지죠.

여러분이 믿는 것 혹은 증오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여러분의 가치가 결정되는 관계를 말합니다.

여러분 자체로 인정받는 게 아니고요.

진정한 유대감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생깁니다.

유대감은 타인과 함께할 때 존재하고

그 관계를 성숙시킬 것인가는 여러분의 선택이지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매일 아침 제 친구 조나단은 뉴욕의 늘 같은 가판대에서 신문을 구입합니다.

판매원과 제 친구는 단순히 거래를 하는게 아닙니다.

잠시 안부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지요.

그러던 어느날 조나단에게는 잔돈이 없었고

그러자 판매원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걱정 말고 그냥 가져가세요."

하지만 조나단은 계산을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잔돈 때문에 다른 가게에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샀습니다.

조나단이 가판대로 돌아와 계산을 하자 판매원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상처를 받은 거죠.

그는 호의를 베풀었는데 조나단은 그 호의를 거부한 겁니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요.

한, 두번 만난 지인을 길에서 마주쳐도 저도 모르게 지나쳤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저에게 이야기하는데 저는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을 수도 있지요.

모두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중요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도록 하겠죠.

하지만 여러분들이 사랑으로 관계를 이끈다면 서로를 연결하는 끈이 생기고 서로를 지지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대감은 삶의 의미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가족과 우정을 결속시킵니다.



둘째 기둥은 목적입니다.

목적을 찾는 것은 행복하게 만드는 직업을 찾는 것과는 다릅니다.

삶의 목적이란 자신이 원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무언가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한 의료인의 목적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제 인생의 목적은 아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목적의 중요한 점은 여러분의 강점을 이용해 타인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직업을 통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기여해서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직장 내에서의 무기력함, 실직 낮은 취업율 이런 문제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존재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치있는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 방황합니다.

물론 직장을 통해서만 목적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목적은 여러분이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고

그 "이유"라는 것은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셋째 기둥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초월성이라고 하지요.

초월성의 상태를 자주 경험하게 되진 않지만 그건 바쁜 일상에서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순간입니다.

자신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지요.

좀 더 높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초월성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분은 교회에서 경험한다고 하셨고요.

작가인 저는 글을 쓸 때 초월성을 느낍니다.

종종 시간도, 장소도 초월한 어떤 공간에 있다고 느끼지요.


이 초월성의 경험은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연구에서 학생들에게 200피트 높이의 유칼립투스 나무를 1분 동안 바라보게 했습니다.

잠시 후 그 학생들은 자신 위주의 마음이 사라지고 

타인을 도와줄 기회가 생겼을 때

좀 더 관대하게 행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속감, 삶의 목적, 초월성까지 말씀드렸지요.

마지막 기둥이 무엇인지 말씀드리면 놀라실 것입니다.

그건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거지요.


일상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삶을 명확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지요.

하지만 스스로가 우리 이야기의 저자이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이야기 전개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단순히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수정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어야죠.


풋볼 경기 중 부상으로 두 다리를 못쓰게 된 청년 에메카를 만났습니다.

그가 부상을 입고 스스로 이렇게 말했지요.


"풋볼 경기를 할 때, 내 삶은 정말 멋졌는데 지금 내 꼴 좀 봐."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삶은 꽤 괜찮았는데, 지금은 정말 형편없군."


이러면서 근심이 많고 우울해합니다.

에메카 역시 한동안 이런 마음이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를 새롭게 엮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부상을 당하기 전에 내 삶에는 어떤 목적도 없었습니다.

파티를 즐겼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부상을 이겨내면서 저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지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수정하면서 그의 삶 역시 변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에메카는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주었고

삶의 목적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자인 댄 맥아덤스는 이것을 "회복의 이야기"라고 부릅니다.

나쁜 상황이 좋은 상황으로 회복되는 이야기를 말하지요.

그는 의미있는 삶을 이끄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회복, 성장, 사랑으로 정리하여

들려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 스스로 하실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이 자신을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지

잃은 것은 무엇인지, 또 얻게된 것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합니다.

에메카 역시 이런 방식을 사용했지요.


물론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수 년이 걸릴 수도 있고,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우리 모두 애쓰며 살고 있지요.

하지만 자신의 아픈 과거를 감싸안으면 새로운 통찰력과 지혜가 생겨서

여러분을 지탱해주는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소속감, 삶의 목적, 초월성, 이야기 이것들이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4개의 기둥'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운이 좋게도 이 4개의 기둥을 모두 품고 살 수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몬트리올의 저희 집에서 수피교도의 예배당을 운영하셨습니다.

수피교란 빙빙도는 수피춤을 추는 관습이 있는 종교이고

시인 루미와 관련이 있지요.


일주일에 두 번 교인들은 저희 집으로 와서 명상을 하고 페르시안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작은 사랑 실천의 일환으로 모든 생명을 위해 봉사합니다.

자신을 해치는 사람이 있더라도, 늘 선한 마음을 갖도록 훈련합니다.

하지만 자아를 통제하라는 삶의 목적을 종교를 통해 갖게 되지요.


저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났고

제 삶에서 종교적인 활동을 멈추게 되자

저는 저를 지탱하고 있었던 끈이 끊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저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지요.

저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수피교도 예배당에서의 종교 활동은

삶의 의미를 찾는 진정한 문화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건출물을 세울 때 기둥이 중요하듯

삶의 기둥이 있으면 우리가 깊이, 진정으로 살 수 있습니다.

결속력이 강한 다른 사회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좋은 사회든 나쁜 사회든 말이지요.

범죄 조직이든, 사이비 종교집단이든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기둥을 사용하여

살아야할 이유, 죽어야할 이유를 사람들에게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도록 사회 차원에서 좋은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우리 가족과 우리 제도 안에서 이러한 기둥을 세워서 개개인들이 그들이 최대치를 이끌어내도록 도와야합니다.


하지만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끊임없는 과정입니다.

매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창조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추가해야 합니다.

물론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경우엔

아버지가 겪으셨던 잊지 못할 경험을 떠올립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달 후에 저의 아버지는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실 뻔 했습니다.

그는 다행히 일어나셨지만, 죽음을 앞두고 어떤 생각이 들었었는지 여쭈어보니

아버지는 꼭 살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오빠와 저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당시 응급 수술을 위해 마취 주사를 맞고 잠들기를 기다리던 중

10을 거꾸로 세는 일따위는 하지 않고

대신 저의 오빠와 저의 이름을 주문처럼 반복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죽게 된다면, 그가 말하는 마지막 단어가 우리의 이름이길 바라셨지요.

저의 아버지는 목수이자 수피교인이셨습니다.

검소한 삶을 사셨지만 훌륭한 인생을 사신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그는 살아야 할 의미를 생각하셨죠.

그건 바로 사랑입니다.

가족이라는 유대감 속에서 아버지라는 그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저희의 이름을 반복하는 초월적인 명상을 하셨으며

살아야 할 이유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 스스로가 쓴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삶의 의미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는지 보여줍니다.


행복함은 왔다가,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이 너무나 좋거나 혹은 너무나 괴로울 때

여러분을 지탱해주는 것은 삶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번역: Yousun Kang 

검토: Jihyeon J.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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